합의가 재판에서 차지하는 자리
법원이 형을 정할 때 살피는 사정은 형법 제51조에 네 가지로 적혀 있습니다. 그중 마지막이 범행 후의 정황입니다. 피해자에게 사과했는지, 손해를 갚았는지, 피해자가 어떤 뜻을 밝혔는지는 대부분 여기에 해당합니다. 양형의 조건을 전체적으로 설명한 글은 따로 있으므로, 이 글은 합의와 피해 회복에 관한 부분만 다룹니다.
형법 제51조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참작하여야 한다.
합의가 재판에 미치는 효과는 죄의 종류에 따라 크게 갈립니다. 상해나 사기처럼 피해자의 뜻과 상관없이 처벌할 수 있는 죄에서 합의는 형을 정할 때 참작되는 사정입니다. 합의를 해도 유죄 판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반면 폭행, 협박처럼 피해자의 뜻이 공소의 조건인 죄에서는 합의에 담긴 처벌불원 의사가 재판 자체를 끝낼 수 있습니다. 내 사건이 어느 쪽인지 모르면 합의의 시기와 내용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합의서, 처벌불원서, 탄원서는 하는 일이 다릅니다
세 서류는 함께 제출되는 일이 많아 같은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담는 내용이 다릅니다.
합의서
합의서는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손해 문제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적은 문서입니다. 금액과 지급 방법, 민사 청구를 어디까지 정리하는지가 주된 내용입니다. 처벌에 관한 뜻이 어떻게 적혔는지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데, 대법원은 합의서의 문구와 제출 경위를 살펴 판단해 왔습니다.
대법원 2008. 2. 29. 선고 2007도11339 판결피해자가 원만히 합의했고 차후 민·형사상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제1심법원에 제출한 사안에서,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합의서라는 이름만 붙으면 언제나 처벌불원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반의사불벌죄에서 처벌불원을 인정하려면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법원 2017. 9. 7. 선고 2017도8989 판결의료분쟁 조정조서에 있는 "금원 지급 의무를 임의 이행하면 형사처벌을 원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은 처벌불원 의사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한편 "일체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피고인에게 작성해 준 경우에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에게 처벌불원 의사를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대신 표시할 권한을 준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므로 이를 더 심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판결은 문구 하나가 결론을 가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조건을 붙인 문장인지, 확정적인 뜻을 밝힌 문장인지, 그 서류가 누구의 손을 거쳐 법원에 도착했는지가 모두 판단 대상이 됩니다.
처벌불원서
처벌불원서는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뜻을 밝힌 문서입니다. 돈을 받았는지와 별개로 작성될 수 있습니다. 양형기준은 처벌불원을 아주 좁게 정의합니다. 서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족되지 않고, 피고인의 진심 어린 뉘우침과 피해자의 정확한 이해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정의 전문은 뒤에서 옮깁니다.
피해자 본인의 의사인지도 따집니다. 의사능력이 있는 피해자라면 미성년자라도 혼자서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입니다(대법원 2009. 11. 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14세 10개월 피해자의 철회 사건). 다만 그 판결도 의사능력 유무를 신중하게 심리해야 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가족이 대신 결정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반의사불벌죄에서는 그렇게 볼 수 없다고 정리했습니다.
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성년후견인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의사무능력자인 피해자를 대리하여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결정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없고,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수의견은 이 경우 성년후견인과의 합의를 소추조건이 아니라 양형인자로 고려하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우자인 성년후견인이 합의금을 받고 처벌불원 서면을 제출했지만, 공소기각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후견인과 맺은 합의는 양형에서 참작될 여지가 있을 뿐입니다.
탄원서
탄원서는 선처를 부탁하는 글입니다. 작성자는 피해자일 수도, 가족이나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법률에 정해진 효력은 없고, 재판부가 범행 후의 정황과 피고인의 환경 등을 살피는 자료로 읽을 뿐입니다. 피해자 아닌 사람의 탄원서는 처벌불원과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피해자가 쓴 탄원서라도 내용과 경위를 함께 봅니다.
대법원 2020. 8. 20. 선고 2020도6965, 2020전도74 판결양형기준상 특별감경인자인 처벌불원이란, 피고인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 피해에 대한 상당한 보상이 이루어졌으며,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법적·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면서 이를 받아들여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뜻합니다. 피해자가 탄원서와 처벌불원서를 냈으나 가족 등의 지속적 회유에 의한 것으로 진심이 아니었다고 법정에서 밝힌 사안에서, 이를 특별감경인자로 보지 않은 원심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친족 사이의 성범죄 사건으로, 피해자가 제1심 증언 때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가 약 2달 만에 선처 탄원서를 낸 경위가 문제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태도 변화를 고립감과 부담감, 죄책감의 발로로 본 원심을 수긍했습니다. 제출된 서류가 있어도 그 뒤의 사정까지 법원이 들여다본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 판결입니다.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에서는 재판이 끝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뜻이 공소의 조건이 되는 죄는 두 갈래입니다. 친고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고, 반의사불벌죄는 고소 없이도 수사와 기소가 가능하지만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서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조문으로 확인한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반의사불벌죄: 폭행·존속폭행(형법 제260조 제3항), 협박·존속협박(형법 제283조 제3항), 명예훼손과 출판물 명예훼손(형법 제312조 제2항)
- 친고죄: 사자명예훼손과 모욕(형법 제312조 제1항), 친족 사이의 권리행사방해(형법 제328조 제1항), 이 규정을 준용하는 친족 사이의 사기·공갈(형법 제354조)
- 어느 쪽도 아닌 죄: 상해(형법 제257조)에는 이런 조항이 없습니다. 폭행과 이름은 비슷해도 합의가 공소기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특별법에도 같은 취지의 조항이 흩어져 있으므로 정확한 죄명과 적용 법조로 확인해야 합니다. 차의 교통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중과실치상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2항이 반의사불벌로 정하고, 앞서 본 전원합의체 판결이 이 조항을 다룬 사건입니다. 다만 같은 항 단서가 도주, 음주측정 거부,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음주운전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있어 사고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고소는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고, 고소를 취소한 자는 다시 고소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한 경우에도 같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27조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건에서 고소가 취소되었을 때(제6호),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였을 때(제7호)에는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합니다.
공소기각은 유무죄 판단 없이 재판을 마치는 판결이므로, 일반적인 양형 참작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제327조는 2026. 8. 4. 개정되어 호 번호가 바뀌었습니다. 예전 판결문과 자료에 고소 취소는 제5호, 처벌불원은 제6호로 적혀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 효과에는 두 가지 제약이 따릅니다. 먼저 한 번 표시한 처벌불원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대법원 1994. 2. 25. 선고 93도3221 판결은 합의서를 수사기관에 낸 피해자가 나중에 합의를 무효로 한다고 해도 다시 처벌을 희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로서는 서명 전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공소사실이 바뀌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1도2233 판결피해자가 제1심에서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표시를 한 뒤에도 항소심에서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에서 폭행을 상해로 바꾸는 공소장변경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법원은 변경된 공소사실을 심리·판단해야 합니다.
양형기준이 합의를 다루는 방식
양형기준 전체의 구조는 다른 글에서 설명하고, 여기서는 합의와 관련된 인자만 봅니다. 아래 내용은 대법원 양형위원회 누리집에 실린 시행 중 양형기준 원문을 2026년 11월에 확인한 것입니다. 양형기준은 자주 수정되고 범죄군마다 표현이 다르므로, 자기 사건에 적용되는 범죄군의 원문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
양형기준에서 형량범위는 특별양형인자로 정하고, 선고형은 그 범위 안에서 특별양형인자와 일반양형인자를 함께 고려해 정합니다. 합의 관련 인자가 어느 칸에 있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셈입니다.
- 사기범죄: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로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 일반양형인자 중 감경요소로 "상당한 피해 회복", 가중요소로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를 둡니다.
- 폭력범죄: 같은 틀로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 "상당한 피해 회복",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를 둡니다.
- 성범죄: 합의와 관련된 특별양형인자는 "처벌불원"이고 실질적 피해 회복이라는 항목은 없습니다. 일반양형인자로 "상당한 피해 회복"이 있고, 가중요소로 "2차 피해 야기"가 있습니다.
성범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돈으로 회복했다는 사정이 피해자의 용서를 대신하지 못하는 범죄군이 있습니다.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도 2023. 7. 1. 시행 양형기준이 처벌불원 또는 합의의 지위를 범죄별로 차등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벌불원의 정의는 세 범죄군에서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양형기준 정의 규정 중 처벌불원(사기·폭력·성범죄 양형기준)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나 유족(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이 처벌불원의 법적·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면서 이를 받아들여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피고인 측의 사실상의 강요 또는 기망에 의한 처벌불원 등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지 않은 경우나,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의 처벌불원의사에 통상적으로 납득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2020도6965 판결이 설명한 정의에는 합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과 피해에 대한 상당한 보상이 들어 있었는데, 지금 양형기준의 문장에는 그 표현이 없습니다. 돈을 주었는지보다 피해자가 무엇을 알고 어떤 뜻을 밝혔는지에 정의의 중심이 놓여 있는 셈입니다. 다만 피해자의 뜻에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는지를 따지므로, 피해 회복의 내용이 판단에서 빠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별양형인자가 여러 개일 때의 평가 원칙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사기·폭력범죄 양형기준은 같은 숫자의 행위인자를 행위자/기타인자보다 중하게 고려하면서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 피해자 또는 유족의 의사는 행위인자와 동등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집행유예 기준에서도 사기·폭력범죄는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을, 성범죄는 "처벌불원"을 긍정적 주요참작사유로 둡니다. 물론 이런 인자가 있다고 해서 특정한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양형기준은 권고이고, 부정적 사유와 함께 종합해 판단합니다.
전액을 갚지 못했을 때의 일부 변제와 피해 회복 노력
피해를 전부 갚을 형편이 안 되는 피고인이 많습니다. 일부 변제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지만, 어느 칸으로 평가받는지는 범죄군과 금액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기범죄 양형기준 정의 규정 중 실질적 피해 회복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끝에 합의에 준할 정도(재산적 피해만 발생한 경우에는 그 손해액의 약 2/3 이상)로 피해를 회복시키거나 그 정도의 피해 회복이 확실시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약 3분의 2라는 수치는 사기범죄 정의에 적힌 것입니다. 폭력범죄 정의에는 "합의에 준할 정도"라고만 되어 있고,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범죄피해자 구조금을 받은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외한다는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다른 범죄군에 3분의 2를 그대로 옮겨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적은 회복은 일반양형인자인 "상당한 피해 회복"에 해당하는지가 문제 됩니다. 이번에 확인한 세 양형기준에는 이 항목의 별도 정의 문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금액 비율로 단정할 수 없고, 재판부가 사건별로 평가합니다. 사기·폭력범죄 집행유예 기준의 부정적 일반참작사유에는 "피해 회복 노력 없음"이 있으므로, 꾸준히 갚아 온 기록은 적어도 이 평가를 피하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제출하게 되는 것은 입금 내역입니다. 분할 지급을 약속했다면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의 형사소송 절차상 화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을 믿지 못해 망설이는 피해자에게 집행력 있는 문서를 주는 방법입니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6조피고인과 피해자는 해당 피고사건과 관련된 피해를 포함한 민사상 다툼에 관하여 합의한 경우, 그 피고사건이 계속 중인 제1심 또는 제2심 법원에 합의 사실을 공판조서에 기재하여 줄 것을 공동으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은 변론 종결 전까지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서면으로 합니다. 합의가 기재된 공판조서의 효력에는 민사소송법 제220조 등이 준용됩니다.
민사소송법 제220조는 화해를 적은 조서에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조문입니다. 그만큼 피고인에게도 무거운 약속이 됩니다. 재판 중에 지급을 약속해 놓고 선고 뒤에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사공탁이라는 제도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수사와 재판 기록에서 가려져 있어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인적사항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피해자를 위해 돈을 맡길 수 있게 한 것이 형사공탁입니다. 인적사항을 알지만 피해자가 돈 받기를 거절하는 경우는 형사공탁 특례의 문제가 아니고, 일반 변제공탁을 검토하게 됩니다. 다만 아래에서 볼 회수 제한과 의견 청취 규정은 조문상 형사사건 피해자를 위한 변제공탁과 금전 공탁을 대상으로 하므로 형사공탁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어디에, 어떻게 맡기는가
공탁법 제5조의2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법령 등에 따라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피해자를 위하여 하는 변제공탁(형사공탁)은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에 할 수 있습니다. 공탁서에는 피공탁자의 인적사항 대신 법원과 사건번호, 사건명, 조서·진술서·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명칭을 기재하고, 공탁원인사실은 피해 발생시점과 채무의 성질을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재할 수 있습니다. 피공탁자에 대한 공탁통지는 공탁관이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고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고, 수령을 위한 동일인 확인은 법원이나 공소청이 발급한 증명서에 의합니다.
조문이 대상을 피고인으로, 장소를 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 소재지 공탁소로 정하고 있으므로 이 특례는 공소가 제기된 뒤의 제도입니다. 공탁규칙 제82조부터 제84조까지가 세부를 정합니다. 공탁서에는 공소장·조서·진술서·판결서에 기재된 피해자의 성명(성·가명 포함)을 쓰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는 쓰지 않고, 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을 확인할 수 있는 서면, 피해자 명칭이 적힌 공소장 부본이나 조서·진술서·판결서 사본, 인적사항을 알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서면을 붙입니다. 공고는 전자공탁홈페이지에 합니다.
맡긴 돈은 쉽게 되찾을 수 없습니다
형사사건 피해자를 위한 변제공탁에는 회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공탁법 제9조의2공탁자가 형사사건 피해자를 위하여 변제공탁을 한 경우에는 제9조제2항제1호 및 제3호의 사유로는 공탁물을 회수하지 못합니다. 다만 공탁물의 수령인으로 지정된 자가 회수에 동의하거나 수령을 거절하는 의사를 공탁소에 통고한 경우, 공탁의 원인이 된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거나 불기소 결정(기소유예는 제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회수할 수 있습니다.
선고 뒤에 돈을 빼 가는 일을 막으려는 규정입니다. 공탁을 생각한다면 유죄가 확정되어도 돌려받기 어려운 돈이라는 점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수령을 거절해 회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실제로 회수하는지 여부는, 아래 양형기준 정의에 비추어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의견을 반드시 묻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6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권리 회복에 필요한 금전을 공탁한 경우에는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를 포함)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다만 의견을 청취하기 곤란한 경우로서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형사소송규칙 제134조의13법원은 검사나 피해자 변호사에게 의견조회서를 보내 제출받거나, 서면·전화·전자우편·휴대전화 문자전송 등 적당한 방법으로 의견을 확인합니다. 피해자등이 이미 공탁에 관하여 의사를 진술한 경우,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피공탁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등은 예외입니다. 피해자등이 제출한 의견은 범죄사실 인정을 위한 증거로 할 수 없습니다.
이 조문은 일반 변제공탁과 형사공탁을 나누지 않고 "금전 공탁"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예외 사유로 들어 있는 점에서, 선고 직전의 공탁이 피해자 의견을 듣는 절차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공탁을 어떻게 평가할지 기준은 양형기준에 나와 있습니다.
양형기준 정의 규정 중 실질적 피해 회복(공탁의 경우, 사기·폭력범죄 양형기준)공탁의 경우에는 공탁에 대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를 포함)의 의견, 피고인이 법령상 공탁금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회수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 피해 법익의 성질 및 피해의 규모와 정도 등을 신중하게 조사, 판단한 결과 실질적 피해 회복에 해당하는 경우만을 의미합니다.
공탁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이 평가의 출발점일 뿐입니다. 재산 피해 사건과 사람의 신체나 생명에 관한 사건은 "피해 법익의 성질"에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판결에서 공탁이 참작되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
수원고등법원 2026. 4. 9. 선고 2025노1707 판결피고인이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원심과 항소심에서 공탁했으나, 유족들이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면서 엄벌을 탄원하고 있으므로 공탁사실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상고가 제기된 사건이어서 확정된 판단으로 소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재판 실무의 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같은 판결에서 재판부는 다른 피해자와의 합의와 처벌불원은 유리한 정상으로 적었습니다. 합의는 받아들여진 것이고 공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는 차이가 판결문 한 문장에 드러납니다.
합의를 언제 하느냐, 항소심에서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시기에 따른 법적 차이는 죄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에서 공소기각을 받으려면 제1심 판결 선고 전에 뜻이 법원에 닿아야 합니다.
대법원 2000. 9. 29. 선고 2000도2953 판결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죄를 논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의 철회 또는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는 제1심판결 선고시까지 할 수 있고, 그 후의 의사표시는 효력이 없습니다.
대법원 2019. 12. 13. 선고 2019도10678 판결처벌불원 의사표시의 부존재는 소극적 소송조건으로서 직권조사사항이므로, 당사자가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않았더라도 원심은 직권으로 조사·판단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국선변호사가 제1심판결 선고 전에 낸 처벌불원서를 원심이 심리하지 않아 파기되었습니다.
두 판결을 합치면 이렇습니다. 제1심 선고 전에 낸 처벌불원을 법원이 놓쳤다면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제1심 선고 뒤에 처음 받은 처벌불원으로는 공소기각을 받을 수 없고, 이때는 양형에 참작될 사정으로 남습니다. 변론이 끝난 뒤 선고 전에 합의가 된 경우에는 변론 재개를 신청할 수 있지만(형사소송법 제305조), 재개 여부는 법원이 필요성을 보고 정합니다.
그 밖의 죄에서는 시기가 공소기각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형량에 참작되는 사정이므로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 낼 수 있습니다. 항소심에서 처음 합의가 이루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춘천) 2025. 11. 5. 선고 2025노137 판결제1심 선고 뒤 항소심에 이르러 합의금을 지급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한 사건입니다. 재판부는 양형기준상 특별양형인자 중 감경요소인 처벌불원을 인정했고, 반성, 처벌 전력 없음, 가족의 선도 다짐 등을 함께 유리한 정상으로 적어 제1심의 징역 3년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도 검사 항소가 일부 받아들여져 제1심 판결이 파기되었고, 합의 하나만으로 집행유예가 된 것은 아닙니다. 양형부당을 다투는 항소심 절차는 다른 글에서 다룹니다(형사소송법 제361조의5 제15호). 그래도 합의가 늦었다고 소용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상고심까지 가면 사정이 다릅니다.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뿐이므로(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항소심 변론 종결 때까지가 사실상의 마지막 시기가 됩니다.
시기를 앞당겨야 하는 이유는 법적 효과 말고도 있습니다. 재판부에 자료를 낼 시간이 넉넉해야 피해자 의견을 듣는 절차도 제대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피고인 쪽의 사정일 뿐이고, 피해자에게 빨리 답하라고 재촉할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합의를 강요하면 가중요소가 되고, 새로운 범죄가 되기도 합니다
합의가 절실해질수록 가장 위험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습니다. 피해자가 거절하는데 계속 연락하거나,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가거나, 가족을 앞세워 설득하는 일입니다. 피해자에게는 범죄 뒤에 다시 겪는 피해가 됩니다. 대법원도 이 문제를 직접 지적했습니다.
대법원 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전원합의체 판결(다수의견 중)피해자의 처벌불원의사의 존부에 지나치게 무게중심을 두는 형사사법절차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같은 사회적 갈등이나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처벌불원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행위가 가혹함으로 치부되어, 피해자가 원치 않는 의사표시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형기준은 이런 행동을 가중요소로 정해 두었습니다.
양형기준 정의 규정 중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사기·폭력범죄 양형기준)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합의거절에 대한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암시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가하거나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일으킨 경우를 의미합니다.
성범죄 양형기준의 "2차 피해 야기"에는 여기에 더해 피해자의 인적사항 공개, 신고에 대한 불이익조치, 모욕적 발언, 집단 따돌림 등이 들어 있습니다. 강요로 받아 낸 처벌불원은 앞서 본 정의에서 제외됩니다. 합의를 받아 내려다 감경요소는 인정받지 못하고 가중요소만 더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행동의 정도에 따라서는 그 자체가 새로운 범죄입니다.
- 폭행이나 협박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강요죄가 됩니다(형법 제324조).
- 고소를 취소하게 할 목적이나 진술·증언을 막을 목적으로 폭행, 협박 등을 하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보복범죄 가중처벌 조항에 해당합니다(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9 제1항, 제2항).
- 자기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필요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 친족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면담을 강요하거나 위력을 행사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같은 조 제4항).
이 조항들은 피고인 본인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닙니다. 양형기준이 "피고인 측"의 사실상의 강요라고 적은 것처럼, 가족이나 지인이 나서서 한 행동도 평가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2020도6965 판결의 피해자가 법정에서 말한 것도 가족 등의 지속적 회유였습니다.
피해자가 거절하면 그 뜻을 받아들이고 멈추는 것이 맞습니다. 변호인이 있다면 연락은 변호인을 통하고, 인적사항을 모르는 피해자의 연락처를 다른 경로로 알아내려 해서도 안 됩니다. 피해자가 만나기를 원치 않아도 쓸 수 있는 방법으로 공탁이 있고, 사과의 뜻은 재판부에 제출하는 서면으로 밝힐 수 있습니다. 합의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동안의 변제 기록과 함께 스스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재판부에 보여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재범방지교육 이수도 그중 하나인데, 피해 회복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며 반성과 재범방지에 관한 다른 글에서 함께 설명합니다.
피해자 쪽에서 알아 둘 내용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피해자이거나 그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합의는 피해자의 의무가 아닙니다. 합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근거는 이번에 확인한 조문 어디에도 없습니다.
-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피해자등의 신청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증인으로 신문해야 하고, 피해의 정도와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94조의2).
- 공탁이 되었다면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공탁소에 통고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공탁자가 공탁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됩니다(공탁법 제9조의2 제1항 제1호).
- 처벌불원 서류에 서명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반의사불벌죄에서 표시한 처벌불원은 나중에 철회할 수 없다는 것이 93도3221 판결의 판단이고, 고소를 취소한 뒤에는 다시 고소할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
- 금액을 받는 합의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합의서의 문구가 처벌불원으로 읽힐 수 있으니 서명 전에 무엇을 적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문장은 2007도11339 판결처럼 처벌불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압박을 받아 서명한 일이 있다면 재판부에 그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2020도6965 사건의 피해자는 항소심 법정에 나와 처벌불원서가 가족의 회유로 쓴 것이고 진심이 아니었다고 밝혔고, 법원은 그 말을 듣고 서류를 감경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2026. 11. 4.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양형자료가 특정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법학박사 ·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변호사. 재범방지교육원의 모든 영상 강의를 직접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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