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제도는 무엇을 미루는가
재판 결과를 처음 듣는 사람은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를 비슷한 말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이름에 답이 들어 있습니다. 집행유예는 형을 선고하되 그 집행을 미루는 것이고, 선고유예는 형의 선고 자체를 미루는 것입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면 징역 1년이라는 형은 이미 선고되었습니다. 다만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2년 동안 그 형을 집행하지 않으며, 그 기간을 무사히 넘기면 형의 선고가 효력을 잃습니다. 구치소에 있던 사람은 선고 뒤 석방되는 것이 보통이어서 무죄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집행유예는 분명한 유죄 판결이고 유죄의 기록도 남습니다.
선고유예는 법원이 유죄를 인정하고 어떤 형을 내릴지도 정해 두지만, 그 형을 선고하지 않고 2년을 기다립니다. 2년이 무사히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봅니다. 형법상 유예 제도 가운데 가장 가벼운 결과입니다.
- 대상이 되는 형: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금고, 자격정지, 벌금
- 전과 요건: 집행유예는 금고 이상의 형과 관련된 일정 기간에 범한 죄만 제외하고, 선고유예는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가 있으면 제외합니다
- 유예기간: 집행유예는 법원이 1년 이상 5년 이하에서 정하고, 선고유예는 2년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 기간이 지난 뒤: 집행유예는 형의 선고가 효력을 잃고, 선고유예는 면소된 것으로 봅니다
- 붙을 수 있는 처분: 집행유예에는 보호관찰, 사회봉사, 수강을 명할 수 있고, 선고유예에는 조문상 보호관찰만 명할 수 있습니다
양형의 일반 기준인 형법 제51조는 두 제도 모두의 판단 재료입니다. 제51조 자체의 내용과 양형기준의 구조는 다른 글에서 깊게 다루므로, 여기서는 유예 여부를 가르는 부분만 살펴봅니다.
집행유예의 요건
형법 제62조(집행유예의 요건)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다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그 집행을 종료하거나 면제된 후 3년까지의 기간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형을 병과할 경우에는 그 형의 일부에 대하여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기준이 되는 3년은 법정형이 아니라 법원이 실제로 선고하는 형입니다. 법정형의 하한이 3년을 넘는 죄라도 감경을 거쳐 선고형이 3년 이하가 되면 집행유예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선고형이 3년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다른 사정이 아무리 좋아도 집행유예를 붙일 수 없습니다. 감경의 구조는 별도의 글에서 설명합니다.
요건을 모두 갖추어도 법원은 "유예할 수 있다"는 재량을 가질 뿐이며, 집행유예를 반드시 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징역형을 쪼개 일부만 유예할 수 있는가
"1년 6개월 중 6개월만 복역하고 나머지는 유예해 달라"는 식의 주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제2항이 일부 유예를 인정하는 것은 형을 병과하는 경우뿐이라는 이유입니다.
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6도8555 판결하나의 자유형에 대한 일부집행유예는 그 요건, 효력, 일부 실형의 집행 시기와 절차를 입법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 별도의 근거 규정이 필요하므로, 하나의 자유형 중 일부에 대해서는 실형을, 나머지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 판결에서 두 개의 징역형이 따로 선고되는 경우는 다릅니다. 판결이 확정된 다른 죄와 후단 경합범 관계에 있는 죄 등이 그렇습니다. 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0도4637 판결은 이때 하나에는 실형을, 다른 하나에는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같은 판결은 유예기간의 시작점이 판결 확정일이고 법원이 그 뒤의 시점을 임의로 고를 수 없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집행유예가 막히는 전과의 범위
제62조 제1항 단서가 결격사유입니다. 문장이 길어 풀어 쓰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된 날을 시작점으로, 그 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뒤 3년이 되는 날까지를 하나의 구간으로 봅니다. 새로운 죄를 이 구간 안에서 저질렀다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벌금 전과만 있는 사람: 단서의 기준은 금고 이상의 형이므로 벌금 전과는 결격사유가 아닙니다. 다만 양형에서 불리하게 고려될 수는 있습니다.
- 실형을 마친 사람: 출소일 등 집행이 끝난 날부터 3년 안에 범한 죄는 결격입니다. 3년이 지난 뒤 범한 죄라면 단서에 걸리지 않습니다.
- 판결 확정 전에 범한 죄: 조문은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의 기간에 범한 죄를 말합니다. 앞 판결 확정 전에 저지른 다른 범죄가 뒤늦게 재판을 받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이 구간 밖에 있습니다. 대법원은 구법 시절에도 동시에 재판받았다면 한꺼번에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던 경합범에 대해서는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89. 9. 12. 선고 87도2365 전원합의체 판결).
-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죄: 가장 많이 문제 되는 경우입니다. 아래에서 따로 설명합니다.
집행유예 기간 중 다시 죄를 범한 경우
유예기간 중 재범은 두 개의 문제를 동시에 낳습니다. 새 사건에서 다시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앞선 집행유예는 어떻게 되는가입니다. 두 질문의 기준 시점과 조문이 달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새 사건에서 다시 집행유예가 가능한가
대법원은 새 사건의 형을 선고하는 시점에 앞선 유예기간이 남아 있는지를 봅니다.
대법원 2007. 2. 8. 선고 2006도6196 판결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할 때 형법 제62조 제1항 단서에 해당하는 경우란, 이미 집행유예가 실효 또는 취소된 경우와 그 선고 시점에 미처 유예기간이 경과하지 아니하여 형 선고의 효력이 실효되지 아니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로 국한되고, 집행유예가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유예기간이 경과한 경우에는 다시 집행유예의 선고가 가능하다.
같은 범죄라도 선고일이 유예기간 안이냐 밖이냐에 따라 집행유예의 문이 열리기도 닫히기도 합니다. 2019년 판결은 앞의 경우를 보여 줍니다.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도17589 판결형법 제62조 제1항 단서의 결격사유에는 실형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범한 죄뿐 아니라,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할 때 이미 집행유예가 실효 또는 취소된 경우와 선고 시점에 유예기간이 지나지 않아 형 선고의 효력이 남아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확정된 뒤 그 기간 중에 상해 등을 저질러 징역 6개월의 실형을 받았고, 상고가 기각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선고기일을 늦춰 달라는 주장도 적법한 상고이유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의 진행 속도는 피고인이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유예기간이 지난 뒤에 선고되더라도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게 될 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에 취소가 먼저 확정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대법원 2007. 7. 27. 선고 2007도768 판결은 범행 당시 유예기간 중이었고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집행유예 취소결정이 확정된 사안에서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하다고 보아, 집행유예를 선고한 제1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한 항소심을 유지했습니다.
새 사건의 형이 벌금이고 법정형에 벌금이 있는 경우에는 그 벌금을 그대로 선고할 수 있습니다. 단서가 막는 것은 집행유예이지 벌금형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벌금은 금고 이상의 실형이 아니어서 앞선 집행유예의 실효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앞선 집행유예는 언제 효력을 잃는가
형법 제63조(집행유예의 실효)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자가 유예기간 중 고의로 범한 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된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
실효에는 네 가지 조건이 모두 필요합니다. 유예기간 중에 범한 죄여야 하고, 고의범이어야 하며, 금고 이상의 실형이어야 하고, 그 판결이 확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실범으로 처벌받거나, 벌금이 선고되거나, 새 사건에서도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에는 이 조문으로 실효되지 않습니다.
이 네 조건은 2005년 개정으로 정리된 것입니다. 개정 전 조문은 "유예기간중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어 그 판결이 확정된 때"라고만 적고 있었습니다. 대법원 1997. 7. 18. 자 97모18 결정이 그 조문을 두고 언제 범한 죄인지 묻지 않는다고 본 것도 그 때문이어서, 옛 판례를 현재 사건에 그대로 대입하면 곤란합니다. 다만 그 결정이 밝힌 내용, 곧 실효로 유예된 형을 집행하는 것이 거듭 처벌이나 소급 처벌이 아니라는 판단은 제도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됩니다.
실효 사유가 생기면 법원의 별도 재판 없이 집행유예가 효력을 잃고, 검사가 유예되었던 형의 집행을 지휘합니다. 새 사건의 실형에 더해 앞선 사건의 형까지 복역해야 한다는 뜻이어서 실제 구금 기간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유예기간 중 수사를 받게 되었다면 새 사건 하나의 형량만 따져서는 전체 결과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보호관찰, 사회봉사, 수강명령
형법 제62조의2(보호관찰, 사회봉사ㆍ수강명령)①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하거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보호관찰의 기간은 집행을 유예한 기간으로 한다. 다만, 법원은 유예기간의 범위내에서 보호관찰기간을 정할 수 있다.
③ 사회봉사명령 또는 수강명령은 집행유예기간내에 이를 집행한다.
셋은 성격이 다릅니다. 보호관찰은 일정 기간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으며 준수사항을 지키는 처분입니다. 사회봉사와 수강은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거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의무입니다. 대법원 2009. 3. 30. 자 2008모1116 결정도 보호관찰은 바른 생활을 요구하는 조건에, 사회봉사·수강은 특정 시간의 적극적인 의무에 그 특징이 있다고 구별했습니다. 셋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대법원 1998. 4. 24. 선고 98도98 판결은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를 함께 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시간의 상한은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제59조에 있습니다.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사회봉사는 500시간, 수강은 200시간의 범위에서 정합니다. 법원은 사회봉사나 수강의 분야와 장소를 지정할 수도 있습니다. 주거를 옮기거나 1개월 이상 국내외 여행을 할 때 미리 보호관찰관에게 신고해야 하는 것은 보호관찰 대상자와 사회봉사·수강명령 대상자에게 공통된 의무입니다.
보호관찰 대상자에게는 같은 법 제32조에 따라 특별준수사항이 붙을 수 있습니다. 조문에는 특정 시간대 외출 제한, 특정 지역·장소 출입 금지, 피해자 등 특정인 접근 금지, 일정량 이상 음주 금지, 마약류 검사에 따를 것 등이 나옵니다. 판결 선고 때 받는 준수사항 서면은 그래서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
법원이 명할 수 있는 내용의 한계
대법원 2008. 4. 11. 선고 2007도8373 판결형법 제62조의2의 사회봉사는 500시간 내에서 시간 단위로 부과될 수 있는 일 또는 근로활동을 의미하므로, 일정한 금원을 출연하거나 이와 동일시할 수 있는 행위를 명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고, 자신의 범죄행위와 관련하여 어떤 말이나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도록 명하는 내용의 사회봉사명령도 위법하다.
특별준수사항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도6403 판결보호관찰은 형벌이 아닌 보안처분의 성격을 가지며, 필요하고도 적절한 한도 내에서 대상자가 준수할 수 있고 그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으로 부과되어야 한다.
이 판결은 채용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노동조합 지부장에게 보호관찰기간 중 지부장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한 특별준수사항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범행과 직접 이어지는 내용이라면 법상 금지된 행위가 아닌 일까지 한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예입니다.
수강명령과 스스로 찾아 듣는 교육은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재판 전에 재범방지교육을 들었더라도 판결로 수강이 명해졌다면 그 명령은 별도로 남습니다.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제63조가 정한 종료 사유는 명령의 집행 완료, 집행유예 기간 경과, 집행유예의 실효·취소 등이고, 자발적 수강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재판 전 교육이 양형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반성·재범방지 글에서 다룹니다.
집행유예가 취소되는 경우
형법 제64조(집행유예의 취소)①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후 제62조 단행의 사유가 발각된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를 취소한다.
② 제62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한 집행유예를 받은 자가 준수사항이나 명령을 위반하고 그 정도가 무거운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를 취소할 수 있다.
제1항은 결격 전과가 있었는데 모른 채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가 나중에 드러난 경우입니다. "취소한다"고 되어 있어 법원에 재량이 없습니다. 제2항은 "취소할 수 있다"이고, 준수사항 위반이 있어도 그 정도가 무거워야 합니다.
제63조의 실효와 달리 취소에는 절차가 있습니다. 제2항의 경우 보호관찰소장의 신청을 받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고(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제47조), 법원은 본인이나 대리인의 의견을 물은 뒤 결정하며, 그 결정에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335조). 보호관찰소장은 취소 청구 신청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구인한 대상자를 판사의 허가를 받아 유치할 수도 있습니다(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제42조). 출석 요구나 의견 제출 안내를 흘려보내면 자기 사정을 말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어느 정도여야 무거운 위반인가
대법원 2009. 3. 30. 자 2008모1116 결정집행유예의 취소는 자유형의 선고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사회봉사·수강명령의 실패와 다름 아니므로 그 목적을 도저히 달성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보호관찰 대상자에게 부과할 수 있는 사항을 만연히 사회봉사·수강명령 대상자에게 부과하고 재범한 것을 취소 사유로 삼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
그렇다고 위반 행위가 범죄라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취소 절차가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1999. 3. 10. 자 99모33 결정준수사항이나 명령 위반사실이 동시에 범죄행위로 되더라도 그 기소나 재판의 확정 여부 등 형사절차와는 별도로, 위반사실이 인정되고 위반의 정도가 무거운 때에는 집행유예를 취소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수강명령과 함께 약물을 사용하지 말라는 특별준수사항을 받은 사람이 유예기간 중 두 차례 메스암페타민을 투약한 경우였습니다. 새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어도 취소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유예기간이 끝나면 취소할 수 없다
대법원 2023. 6. 29. 자 2023모1007 결정취소청구 심리 도중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하면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기 때문에 더 이상 집행유예의 선고를 취소할 수 없고 취소청구를 기각할 수밖에 없으며, 취소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또는 재항고 상태에서 기간이 경과한 때에도 같다.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제1심에서 취소결정을 받은 사람이 불복하는 동안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취소결정을 뒤집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같은 결정은 법원이 당사자의 의견 진술과 증거 제출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면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예기간이 지난 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형법 제65조(집행유예의 효과)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후 그 선고의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유예기간을 경과한 때에는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
형의 선고가 효력을 잃으면 그 형을 집행할 수 없고, 수형인명부의 해당란도 삭제됩니다(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8조). 그러나 대법원은 법률적 효과가 없어질 뿐 형의 선고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차이는 몇 군데에서 실제로 드러납니다.
가장 분명한 곳이 선고유예입니다. 집행유예 기간을 무사히 마친 사람이라도 나중에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선고유예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도3768 판결형법 제59조 제1항 단서의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란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범죄경력 자체를 의미하고 그 형의 효력이 상실되었는지는 묻지 않으므로, 집행유예 기간을 무사히 경과한 자도 선고유예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이 사건의 전과는 1985년과 1990년의 집행유예였고, 범행은 2001년이었습니다. 십 년이 넘게 지났어도 선고유예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 2007. 5. 11. 선고 2005도5756 판결도 같은 취지이며,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한 경우에는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7조로 실효될 여지가 없고 그 조문으로 실효된다 해도 형 선고 사실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공직 임용도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4호는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예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을 결격자로 둡니다. 제5호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기간 중에 있는 사람을 결격자로 정합니다. 자격과 관련된 다른 법령이나 직장의 규정에도 별도 기준이 있을 수 있으니 본인에게 해당하는 조문을 확인해야 합니다.
벌금형의 집행유예
벌금에 대한 집행유예는 2016년 1월 6일 공포되어 2018년 1월 7일부터 시행된 개정 형법으로 생겼습니다. 그 전날까지 제62조 제1항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만 적고 있었습니다.
상한은 500만 원입니다. 선고하는 벌금이 이를 넘으면 집행유예 대상이 아닙니다. 제62조 제1항 단서도 그대로 적용되므로 결격 구간에 범한 죄라면 벌금이라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유예기간도 1년 이상 5년 이하이며, 이 기간을 무사히 넘기면 제65조에 따라 벌금 선고가 효력을 잃습니다. 반대로 집행유예가 실효되거나 취소되면 그 벌금을 내야 하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징역형과 벌금형이 함께 선고되는 사건에서는 제62조 제2항이 쓰입니다. 벌금을 필수적으로 병과하는 죄에서 징역형에만 집행유예가 붙는 주문이 그런 경우이며, 이때 벌금은 유예되지 않으므로 납부 의무가 남습니다. 판결문에서 유예의 대상이 어느 형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제62조의2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라고만 적고 있어 문언상 벌금을 따로 빼지 않습니다. 다만 사회봉사를 자유형 집행의 대체로 설명한 2007도8373 판결은 벌금 집행유예가 생기기 전의 판결이어서, 벌금 집행유예에 사회봉사나 수강을 붙이는 문제를 그대로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선고유예의 요건과 효과
형법 제59조(선고유예의 요건)①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고려하여 뉘우치는 정상이 뚜렷할 때에는 그 형의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 다만,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
② 형을 병과할 경우에도 형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
형법 제60조(선고유예의 효과)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한 때에는 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벌금 전과만 있는 사람은 조문상 선고유예 대상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몰수와 추징에 대해서도 주형의 선고를 유예하면서 함께 유예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80. 12. 9. 선고 80도584 판결). 보호관찰은 재범 방지를 위해 지도와 원호가 필요할 때 1년의 기간으로 명할 수 있습니다(제59조의2).
뉘우치는 정상은 자백만을 뜻하지 않는다
조문의 "뉘우치는 정상이 뚜렷할 때"는 예전 조문에서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라고 쓰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표현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습니다.
대법원 2003. 2. 20. 선고 2001도6138 전원합의체 판결'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란 반성의 정도를 포함하여 널리 형법 제51조의 양형 조건을 종합적으로 참작할 때 형을 선고하지 않더라도 피고인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사정이 현저하게 기대되는 경우를 가리키고, 반드시 죄를 깊이 뉘우치는 경우만을 뜻하는 것으로 제한하거나 범죄사실을 부인하면 언제나 선고유예를 할 수 없다고 해석할 것은 아니다.
사실을 다투었다는 이유만으로 선고유예의 길이 닫히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판단은 원칙적으로 사실심 법원의 재량이어서 상고심에서 다투기 어렵다는 것이 같은 판결의 내용입니다.
전과의 범위는 넓게 본다
결격사유인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는 집행유예의 결격보다 훨씬 넓습니다. 효력을 잃은 집행유예 전과도 포함된다는 점은 앞서 보았습니다. 이번 범행 뒤에 확정된 판결도 들어갑니다.
대법원 2010. 7. 8. 선고 2010도931 판결형법은 선고유예의 예외사유를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라고만 규정할 뿐 그 전과를 범행 이전의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므로, 형법 제37조 후단 경합범에서 금고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된 죄의 형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건 당시 벌금 외에 처벌 전력이 없던 피고인이라도 그 뒤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었다면 선고유예를 할 수 없다고 보아 원심을 파기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선고유예를 주로 범정이 경미한 초범자를 위한 제도로 설명합니다.
선고유예가 실효되는 경우
형법 제61조(선고유예의 실효)①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자가 유예기간 중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되거나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처한 전과가 발견된 때에는 유예한 형을 선고한다.
② 제59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보호관찰을 명한 선고유예를 받은 자가 보호관찰기간중에 준수사항을 위반하고 그 정도가 무거운 때에는 유예한 형을 선고할 수 있다.
집행유예 실효와 비교하면 사유가 넓습니다. 고의범으로 한정되지 않고, 실형이 아니어도 자격정지 이상의 형이면 됩니다. 유예기간 중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어도 실효 사유에 해당한다는 뜻입니다.
그 대신 절차는 자동이 아닙니다.
대법원 2007. 6. 28. 자 2007모348 결정유예기간 중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검사의 청구에 의한 선고유예 실효의 결정에 의하여 비로소 선고유예가 실효되고, 판결 확정 후 2년이 경과하여 면소된 것으로 간주된 후에는 실효 결정을 할 수 없으며, 즉시항고나 재항고로 실효 결정의 효력이 발생하기 전에 유예기간이 경과한 경우에도 같다.
대법원 2018. 2. 6. 자 2017모3459 결정도 같은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벌금 100만 원의 형에 대한 선고유예를 받은 사람에게 유예기간 중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었지만, 재항고 도중 2년이 지나 실효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2년은 판결 확정일부터 계산한다는 점도 이 결정들에서 확인됩니다.
양형기준이 집행유예를 판단하는 방식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은 형량 기준과 별도로 범죄군마다 집행유예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양형기준 해설에 따르면 이 기준은 선고형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일 때 문제 되며, 단일범에만 적용되고 경합범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구조는 주요참작사유와 일반참작사유를 긍정·부정으로 나눈 표입니다. 평가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요긍정사유만 2개 이상이거나 주요긍정사유가 주요부정사유보다 2개 이상 많으면 집행유예를 권고합니다.
- 주요부정사유만 2개 이상이거나 주요부정사유가 주요긍정사유보다 2개 이상 많으면 실형을 권고합니다.
- 그 밖의 경우나, 일반참작사유가 반대 방향으로 주요참작사유의 개수 차이보다 더 많이 벌어진 경우에는 참작사유를 종합적으로 비교·평가해 결정합니다.
사기범죄 양형기준을 예로 들면 주요긍정사유에 형사처벌 전력 없음,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 자수 또는 내부 고발, 실질적 손해의 규모가 상당히 작은 경우가 들어 있습니다. 주요부정사유에는 5년 이내의 일정한 동종 전과, 미합의, 범죄수익의 의도적 은닉, 실질적 손해의 규모가 상당히 크거나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 등이 있습니다. 이 기준에서 손해 규모가 상당히 작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손해액이 5,000만 원 미만인 경우입니다.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지는 않았으나 그 금액이 5억 원을 넘으면 규모가 상당히 큰 경우로 봅니다. 전과 기간은 집행유예와 벌금은 판결 확정일부터, 실형은 집행 종료일부터 범행 때까지 계산합니다.
표의 항목은 범죄군마다 다르므로 자기 사건의 죄명에 해당하는 기준을 양형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해설도 참작사유에 없는 요소 때문에 권고 결과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법관이 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개수를 맞춘다고 결과가 정해지는 계산식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합의와 공탁, 반성과 재범방지 노력이 이 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각 주제의 글에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판결을 받은 뒤 바로 확인할 것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았다면 판결문의 주문과 함께 받은 서면부터 차분히 읽어 보아야 합니다.
- 유예의 대상: 어느 형에 대한 유예인지, 병과된 벌금이나 추징이 따로 남아 있는지 확인합니다.
- 기간의 끝: 판결 확정일을 알아 두어야 유예기간이 언제 끝나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선고일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부가 처분: 보호관찰 기간, 사회봉사·수강 시간, 특별준수사항과 신고 의무를 확인합니다. 사회봉사와 수강은 유예기간 안에 집행됩니다.
- 생활의 변화: 이사, 장기 여행, 직장 일정 때문에 이행이 어려워질 것 같다면 미리 보호관찰관에게 알립니다. 보호관찰 준수사항은 사정변경의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법원의 절차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4항).
이 글은 2026. 11. 4.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양형자료가 특정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법학박사 ·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변호사. 재범방지교육원의 모든 영상 강의를 직접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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